전체 글
-
미국마트 탐방기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9. 08:50
첫날 매트리스를 사기 위해 들렀던 코스트코는 너무나 익숙한 느낌에 마치 옆동네에 새로 오픈한 코스트코 매장에 온 것 같았다. 시스템이나 매장에서 나는 향취까지 한국에서의 그것과 똑같았고, 커클랜드 마크는 한국 브랜드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숙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히려 코스트코를 한인마트보다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너무나 미국적인 마트에서 한국에 향수를 느끼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집에서 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코스트코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여 쌀이나 생수, 그리고 고기를 구입했다. 미국은 고깃값이 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높은 등급의 소고기는 한우 가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멋모르고 미국에 있는 동안 스테이크는 실컷 먹어보자며 고깃값 무서운 줄 모르고 동네 마트에서 최상등급을 골랐는데, 물가..
-
한국 급식이 그리워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8. 08:50
아이들 학교에는 널찍한 카페테리아가 있었는데 요일별로 메뉴가 달라서 이것저것 먹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스쿨뱅크에 미리 돈을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차감되는 방식으로 매번 거의 열 자리쯤 되는 개인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번호를 잊어버려서 점심을 못 먹을까 봐 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가방과 옷 주머니 등 여기저기에 넣어주었는데,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금세 자신의 번호를 외웠다. 첫 일주일은 매일매일 달랐던 급식 메뉴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 주었다. 어떤 건 완전 자기 스타일이라 맛있었는데 어떤 건 정말 우웩 이었다고도 하고, 과자나 젤리 같은 간식도 살 수 있어서 엄청 재밌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미국식 급식에 익숙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주정도 지나니 아이들은 점심..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꼬리를 무는 생각 2023. 11. 27. 08:50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인 줄 몰랐다. 서른세 살의 젊은 시절부터 달리기를 시작해서 이 책을 쓰는 시점까지 무려 스물다섯 번의 마라톤 완주를 해 왔다. 달리기를 하며 겪는 상황이나 달릴 때의 느낌, 달리면서 깨닫게 된 내용을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이 책은 소설가 하루키와 공존하는 러너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은 러너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달리기 초보자로서 하루키가 달리기를 선택하게 된 이야기가 무엇보다 와닿았다. 나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며 승부를 겨루는 팀 경기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달리기를 할 때도 눈앞의 러너를 앞지른다는 생각보다는 평소의 나의 페이스와 비교해서 속도를 낼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저 끝까..
-
부부는 일심동체(?)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4. 08:50
정착을 위한 일들이 하나둘씩 해결이 되고 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바뀐 거라곤 남편이 직장으로의 출근대신 학교에 등교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차는 한 대밖에 없고 학교에 무료로 장시간동안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남편이 등교하는 날은 내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20분 거리의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아서 학교 주변의 마트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학교로 데리러 갔다. 하지만 그것도 몇 주 지나고 나니 학교 주변의 온갖 상점이란 상점은 다 구경하고 채플힐의 지리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나니 점점 재미가 없었다. 대치동으로 학원을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은 게 밖에서 시간을 때우며 기다리는 게 너무나 고역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정규수업이 끝난 ..
-
영어, 잘하지만 못해요.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3. 08:50
대한항공을 타고 아틀랜타에서 내려 델타항공으로 경유하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입국심사가 길어지면 비행기를 놓칠까 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난 입국심사 덕분에 대기시간만 늘어났다. 지난밤을 짐 싸느라 꼴딱 새워 가뜩이나 멍한 상태의 나에겐 웅웅대는 사람들의 소리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안내방송이 백색소음 같았다. 그저 내가 미국에 와 있다는 걸 실감 나게 해 줄 뿐이었다. 긴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해서 뭐라도 좀 사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드디어 실전영어 1탄이 시작되었다. 주문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걸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샌드위치 하나, 햄버거 하나, 콜라 하나, 오렌지주스 하나.' "May I take yo..
-
삼시 세 끼, 집밥 이선생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2. 08:50
미국 도착 첫날, 짐을 풀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거였다. 이틀 내내 기내식과 패스트푸드만 먹었더니 느글느글해진 속 때문에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온통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김치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로 사 온 냄비를 뜯어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코스트코에서는 딱 한 종류의 백미만 판매하고 있어서, 혹시 안남미 같은 흩날리는 쌀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적당히 찰기가 있었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프라이팬에 굽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마늘장아찌도 꺼냈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일회용 접시에 밥과 반찬들을 담아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앉아 식사를 했다. 별 거 없는 조촐한 식사였지만 정말 정말 맛있었고 긴 여행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미국..
-
본격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1. 08:50
인터넷에서 봤던 아파트 광고사진은 말 그대로 광고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열쇠로 문을 두 개나 열고 들어간 아파트는 부엌의 빌트인 가전들과 세탁기, 건조기를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포근한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인테리어 사진으로만 접하다가 막상 실제로 보니 삭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집의 위치나 구조, 그리고 마룻바닥인 건 변함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입주청소를 막 끝낸듯한 깨끗함과 새하얀 벽이 마음에 들었다. 도착 후 며칠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짐을 정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첫날은 밥을 먹고 씻고 쓰러져서 잠이 들었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학교와 운전면허, 핸드폰개통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가져온 짐을 거실 한쪽 벽에 쭈욱..
-
메아이고투더배쓰룸?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0. 08:50
미국에서의 일 년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 준비와 행정적인 절차나 일정들은 완벽하게 챙기면서 정작 아이들이 맞닥뜨리게 될 낯선 환경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마치 이사 가는 동네의 새 학교에 전학 가듯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리딩게이트'라는 영어책 읽기 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 왔던 첫째 아이는 양치질만큼이나 몸에 밴 습관 덕분에 어느 정도 영어에 익숙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당장 말하는 건 안되더라도 5th grade 수업 정도의 영어 읽기 듣기엔 금방 적응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따로 영어 과외를 하거나 준비를 해 준 것이 없었다. 다행히 예상대로 수업을 듣고 이해하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다만, element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