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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는 일심동체(?)
    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4. 08:50

    정착을 위한 일들이 하나둘씩 해결이 되고 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바뀐 거라곤 남편이 직장으로의 출근대신 학교에 등교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차는 한 대밖에 없고 학교에 무료로 장시간동안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남편이 등교하는 날은 내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20분 거리의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아서 학교 주변의 마트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학교로 데리러 갔다.

    하지만 그것도 몇 주 지나고 나니 학교 주변의 온갖 상점이란 상점은 다 구경하고 채플힐의 지리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나니 점점 재미가 없었다.

    대치동으로 학원을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은 게 밖에서 시간을 때우며 기다리는 게 너무나 고역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정규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른 수업을 더 듣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리고 그동안 내가 ESL수업을 듣거나 집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데리러 가기 시작했다.

     

    또 하나 바뀐 것은 남편과 하루에 거의 20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다.

    남편이 학교에 가거나 각자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한 몸처럼 붙어 지내게 되었다.

    덕분에(?) 하루 삼시 세끼를 항상 함께 먹었고 장 볼 때도 도서관에 갈 때도 항상 함께였다.

    결혼 후엔 연애할 때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듯이, 하루종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모습들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꼼꼼했나 싶기도 하고 다정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집착하는 면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을 함께 헤쳐나가는 든든한 동지였지만 어느덧 익숙한 일상생활로 돌아오고 나니 각자만의 개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의지하며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뭔가 미묘한 긴장감이 언제 어떻게 터져버릴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집 근처에는 American Tobacco Trail이라는 22마일(약 35킬로미터)의 직선 코스가 있었다.

    쭉 뻗은 나무들이 길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주변을 따라 주택단지들이 붙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나 조깅코스로 애용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던 남편은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이 길을 발견한 날부터 거의 매일 이 길을 걸었다.

    한국의 아기자기한 올레길이나 산책로와는 달리 평평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쭉 뻗은 길이 달리고 싶은 질주본능을 일으킨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는 더욱 그리워하며 자주 얘기했다.

     

     

    집 앞에 있는 스포츠센터에 등록도 했다.

    부부가 함께 등록하면 아이들도 무료로 센터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YMCA가 더 유명한 스포츠센터이긴 했지만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고 집 앞의 스포츠센터는 큰 길만 건너면 바로 있어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걸어서 간 적은 몇 번 밖에 없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서 운동을 하는 한두 시간 동안은 서로의 존재를 잊고 개인시간을 갖는데 집중했다.

    아직 집에 TV가 없을 때라  '굿모닝 아메리카' 같은 아침방송이나 여러 채널을 돌려보며 트래드밀을 걷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분 좋게 샤워까지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함께 점심을 먹은 후에도 점점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함께 도서관에 가도 따로 떨어져서 책을 읽거나 함께 다니던 마트도 혼자 다녀오는 등 더 이상 혼자 돌아다니는 게 두렵지 않게 되면서 꼭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가끔 새롭게 발견한 맛집에 가거나 집 근처를 드라이브를 할 때 외에는 각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고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유연한 생활이 가능해졌다.

     

    낯선 환경에 정착하며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배려하며 무사히 일 년을 보낸 느낌은 일종의 전우애 같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이겨내고, 함께 경험하고, 함께 성장하며 느낀 그 감정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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