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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루지 - 개리 마커스 지음
    꼬리를 무는 생각 2023. 12. 1. 08:50

     

     

    인생은 매 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일어날까, 더 잘까.

    아침을 먹을까, 단식을 할까.

    글을 쓸까, 핸드폰을 볼까.

    운동을 나갈까, 쉴까.

    고작 아침 2시간 동안에도 할까 말까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이 매일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반복적인 일상들 중엔 '그냥 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고, 아침은 안 먹고, 글을 쓰고, 운동은 정해진 요일에만 나가는 걸로.

    그러고 나니 아침에 결정해야 할 것은 '무엇에 대해 쓸까?' 밖에는 남지 않은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정해놓고 따르기만 할 수 있는 일들보다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다.

    아무리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고 보면 잘못된 선택인 경우가 훨씬 많다.

    작가는 이것이 '클루지' 때문이라고 한다.

    클루지는 진화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적절함' 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묘하게 설득되었던 이야기는 우리의 척추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직립보행을 하며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살게 해 준 척추는 단 한 개의 기둥으로 전체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척추는 균등하게 몸무게를 분산해 지탱할 수 있는 네 개가 아니라 단 한 개다.

    그것은 척추가 두 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네발짐승의 척추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즉 불완전하게나마 일어서는 것이 아예 일어서지 않는 것보다 (우리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생물에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까지도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클루지라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배워왔다.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인간의 심리가 클루지라니.

     

     

    특정 유전자를 지닌 생물은 살아서 번식하거나, 아니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자연선택은 당장 이로운 유전자들을 선호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를 대안들을 폐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치 오늘 사용한 편법이 내일 문제가 되더라도, 지금 당장 제품을 팔아야만 하는 경영자의 처지와도 비슷하다.

    한마디로 말해 진화는 종종 옛것 위에 새로운 체계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썩 아름답지 못한 과정을 앨먼은 '기술들의 누진적인 중첩'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의 최종 산물은 클루지가 되기 쉽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보다 꽤 많이 왜곡되고 간섭받는다.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과거의 한 사건에 대해 유독 한 사람만 너무나도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때가 있다.

    확신을 갖고 잘못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 보면 기억력이 안 좋아서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신념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우리는 그 신념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부적절한 정보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간다.

    다른 사람의 행동보다는 나에 대한 기억이 더 많기 때문에 기억의 비중부터 차이가 난다.

    나에게 친숙한 것을 선호하며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쉽게 확증편향에 빠진다.

    어쩌면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루지는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는 것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추론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난 두 체계를 남겨 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우리가 이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를 꾀할 때,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을 발전시키며 엄청난 것들을 발명해 내고 이제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향하고 있는 인간이 때때로 멍청하기도 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하고, 인생을 망치는 약물에 중독되기도 하는 이유가 클루지라니.

    어쩌면 너무나도 속 편한 변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저 습관적으로 하거나 행복이라 포장된 짧은 쾌락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후의 감정은 항상 자책과 후회가 남지만, 그렇다고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것이 클루지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신은 나에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침착함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었다.

    -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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