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꼬리를 무는 생각 2023. 11. 27. 08:50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인 줄 몰랐다.
서른세 살의 젊은 시절부터 달리기를 시작해서 이 책을 쓰는 시점까지 무려 스물다섯 번의 마라톤 완주를 해 왔다.
달리기를 하며 겪는 상황이나 달릴 때의 느낌, 달리면서 깨닫게 된 내용을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이 책은 소설가 하루키와 공존하는 러너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은 러너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달리기 초보자로서 하루키가 달리기를 선택하게 된 이야기가 무엇보다 와닿았다.
나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며 승부를 겨루는 팀 경기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달리기를 할 때도 눈앞의 러너를 앞지른다는 생각보다는 평소의 나의 페이스와 비교해서 속도를 낼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저 끝까지 달렸을 때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계속 달리게 되는 이유이다.
하루키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판매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고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매일매일 달리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글을 매일매일 쓴다는 것보다는 내가 쓴 글을 누가 읽는다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다.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볼 때마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발견되고, 계속 수정해나가다 보면 내가 처음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한 이야기는 그날그날 반드시 끝낼 수 있도록, 마음에 들지 않아도 완료버튼을 누르고야 만다.
읽는 사람이 적어도 좋고 많아도 좋다.
조악한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 또한 다행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듯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목표를 정해 나아간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그래서 어려울 것 같고 겁부터 나게 되어 아예 시작조차 미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의 목표도 항상 소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다.
달리기의 목표도 쉬지 않고 30분, 5km 정도를 가볍게 뛰고 돌아오는 것이다.
내 몸이 나의 소박한 목표에 적응하고 나의 무릎이 버텨낼 수 있는 근력과 체중이 갖춰지면 거리를 조금 더 늘려갈 것이다. 최종 목표가 42.194km의 완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달려내고 마는 모습이 그려지긴 한다.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일 것이다.
하루키도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재능 다음으로는 집중력과 지속력을 꼽는데, 비록 재능은 선천적인 것일지라도 집중력과 지속력은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해 나갈 수도 있다.
이것은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삽을 써서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발밑의 구멍을 파 나가다가 아주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비밀의 수맥과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경우다.
이런 경우 정말 '행운'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그 같은 '행운'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지면 깊은 구멍을 파 나갈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근력을 훈련에 의해서 몸에 익혀왔기 때문인 것이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고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꼬리를 무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김종원 지음 (0) 2023.12.04 클루지 - 개리 마커스 지음 (2) 2023.12.01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 - 이수형 지음 (0) 2023.11.17 더 시스템 - 스콧 애덤스 지음 (1) 2023.11.10 왜 그 사람이 말하면 사고 싶을까? - 장문정 지음 (2)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