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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국으로 출발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7. 08:50
“짐은 다 쌌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안부인사처럼 물었다.
“아니, 가기 전날까지 싸야 할 것 같아~”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나름 많이 추려놓아서 가방 안에 넣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수하물 8개와 기내용 캐리어 4개, 그리고 배낭 4개 안에 우리의 짐을 모두 넣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방들만 꺼내두었을 때는 ‘와, 이 많은 짐들을 다 어떻게 가져가지?’ 란 생각에 넣을 공간이 충분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가방에서 저 가방으로 옮기며 아무리 무게를 맞춰보려 해도 가지고 가려던 것들의 반도 못 담은 채 트렁크를 닫아야 했다.
‘이건 진짜 꼭 가져가야 하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려 남겨진 물건들을 보니 계속 미련이 남았다.
결국 넣고 빼고를 반복하다 출발 전날 밤을 꼴딱 새웠다.
오전 8시 비행기라서 새벽에 이동할 수 있게 미리 밴을 예약해 두었다.
기사님은 약속시간인 5시보다 일찍 여유 있게 도착하셨다.
막상 차량을 보니 이 짐들이 다 실릴까? 걱정이 되었다.
‘여차하면 택시를 한대 더 불러야겠네.’
다행히도 경험 많은 기사님의 뛰어난 쌓기 실력 덕분에 트렁크를 빼곡하게 채우고 우리가 앉는 좌석 사이사이에 배낭들까지 껴 넣을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짐을 쌀 때는 ‘왜 이렇게 가져가는 게 없지?’ 싶다가도 트렁크에 넣을 때는 ‘와, 우리 짐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 싶었는데, 막상 트렁크에 차곡차곡 쌓인 짐들을 보니 또 그렇게 많아 보이지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흡사 피난민 같은 위탁수하물들을 맡기고 나니 기내용 캐리어 4개와 배낭 4개만이 남았다.
캐리어를 끌고 탑승장으로 이동하려니 새벽까지도 그렇게 치열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마치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여행 맞지. 길고 긴 장거리 여행.’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부터 탑승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좌석은 비행기 맨 뒷자리였다.
남편이 맨 뒷자리를 예약했다고 했을 때는 좀 걱정이 되었다.
“거기 화장실 앞자리 아니야? 사람들 왔다 갔다 하고 냄새날 텐데.”
“그래도 거긴 양 옆에 좌석이 없고 가운데 네 자리만 있어서 덜 답답할 거야.”
남편 말이 맞았다.
비록 화장실 바로 앞이긴 하지만 맨 뒷자리의 양쪽엔 출입문이 있어서 좌석은 가운데 4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의 밀폐력이 좋아졌는지 화장실 냄새도 안 났다.
간혹 긴 비행에 앉아만 있기 답답한 사람들이 출입문 앞에 잠깐씩 서 있곤 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가장 좋은 점은 등받이를 비행 내내 뒤로 젖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내식을 먹을 때조차도 등받이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히 더 좋았던 것은 아이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안성맞춤인 좌석이었다니.
앉아보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일이다.
긴 비행이었지만 오랜만의 비행이었기에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게임도 하느라 들떠서 잠을 전혀 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그저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현실감이 느껴진 건 입국심사장이었다.
어차피 맨 뒷자리였기에 우리는 앞의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여유를 부리며 비행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다.
입국심사장에는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주변의 웅성거림도 전부 낯선 외국어들이었고, 우리는 영어인지 다른 나라 말 인지도 모를 웅웅 거리는 백색소음에 둘러 쌓여 멍하니 앞사람을 따라 줄지어 걸었다.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말소리 중,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봐도 한국어는 들리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아오며 말했다.
"엄마... 나 한국 가고 싶어요"
어느새 아이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동생을 보며 첫째 아이는 꾹 참는 듯 보였지만, 금세 입을 비죽거리다 닭똥 같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울지 마...... 나도 울고 싶잖아.'
아이들에게 미국에 도착한 첫 느낌이 이런 식이면 안되는데.
뭔가 희망 가득한 설렘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주눅 들고 겁내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니.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인데.
겉으론 의연한 척했지만……
엄마도 무서워.
그때 제복을 입은 공항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앞사람과의 간격을 좁히라고 연신 외치며 줄을 관리하던 직원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제복 입은 외국인은 전부다 미국 경찰로 보여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안녕? 예쁜 공주님, 미국엔 처음 오는 거니?"
Yes 나 No라고 한마디도 못한 채 눈물을 꾹 참고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사실 진정이 되었다기보단 영어로 계속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자기들이 계속 눈물을 보이면 이 사람이 계속 말을 시킬 것 같으니 시선을 주지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신 웃으며 대답을 해주는 걸로 이 어색한 상황은 정리가 되었고, 그녀는 다시 길게 줄 선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자리를 떠났다.
기나긴 줄이 점점 줄어들며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무슨 질문을 할까? 버벅거리면 의심한다고 하던데, 잘할 수 있을까? 수상하다고 입국 거부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족입니까?"
"미국엔 왜 왔습니까?"
"언제 돌아갈 겁니까?"
"네"
"남편이 1년 동안 공부하러..."
"1년 후에..."
심플하고도 허무한 입국심사가 끝났다.
내내 굳은 얼굴로 질문을 하던 직원은 입국도장을 꾹 찍은 후 미소를 지으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땡큐, 해브 어 나이스 데이."를 소심하게 중얼거리며 입국심사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이제 진짜 미국에서의 일 년이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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