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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 끼, 집밥 이선생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2. 08:50
미국 도착 첫날, 짐을 풀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거였다.
이틀 내내 기내식과 패스트푸드만 먹었더니 느글느글해진 속 때문에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온통 갓 지은 하얀 쌀밥과 김치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로 사 온 냄비를 뜯어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코스트코에서는 딱 한 종류의 백미만 판매하고 있어서, 혹시 안남미 같은 흩날리는 쌀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적당히 찰기가 있었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프라이팬에 굽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마늘장아찌도 꺼냈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일회용 접시에 밥과 반찬들을 담아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앉아 식사를 했다.
별 거 없는 조촐한 식사였지만 정말 정말 맛있었고 긴 여행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집밥생활이 시작되었다.
캐리(Cary)에는 2~3년 전쯤 H마트가 생겼다.
미국에 사는 한인 분들의 말씀처럼 '미국에서의 생활은 H마트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할 정도로 한국 식료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큰 메리트였다.그래서 한국에서와 별 다를 바 없이 밑반찬을 만들고 국과 찌개를 끓여 먹는 한식생활이 가능했다.
중고시장에서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과 면기까지 있는 그릇 세트를 저렴하게 구입했다.
마트에서 산 반찬통까지 생기니 제법 구색이 맞춰졌다.
임시로 만든 식탁만 제대로 된 식탁으로 바꾸면 진정한 집밥의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정착 초기에 딱 한번 외식을 한 적이 있는데 중고차를 사기 위해 하루종일 자동차 딜러샵들을 돌아다녀야만 했던 날이었다.
별점이 꽤 높은 파스타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자리를 안내받고 주문을 해서 식사를 하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엔 '실전영어-식당 편'의 대화가 마치 대본처럼 떠올랐지만, 정작 주문할 땐 서투른 영어에 괜히 위축되고 점점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다른 테이블엔 웃으며 주문을 받으면서 우리에겐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피해의식까지 느꼈다.
그런 불편한 상황에 음식까지 맛이 없었다.
주문한 4개의 파스타 모두 우리의 입맛엔 너무 짜고 자극적인 데다가 면은 뻣뻣할 정도로 덜 삶은 듯했다.
그렇다고 음식에 대한 컴플레인을 할 자신은 없고 그저 우리끼리 조용히 불평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직원이 계속 와서 식사는 어떤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는 것조차 너무 불편했다.
맛없는 식사에 대해 그저 웃는 낯으로 "맛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서글펐다.
계산서에 내가 주고 싶은 팁을 적어 카드와 함께 다시 돌려줘야 했는데, 과연 얼마를 줘야 적당한가 한참을 고민하며 계산기까지 두들겨봤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식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했던 우리의 첫 외식은 그렇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운 주방 환경에서 새로운 조리도구들을 사용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특히 모기장처럼 생긴 코일 전기레인지는 마치 하이라이트처럼 잔열을 이용한 요리가 가능했는데, 인덕션과 가스레인지만 사용해 본 나에게는 그것조차 또 다른 재미였다.
그렇게 짐을 줄이려고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도 한국에서 사용하던 수저와 작은 뚝배기 하나를 챙겨 왔다.
'너무 과한가?'싶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뚝배기를 챙겨 온 나 자신을 얼마나 칭찬했는지 모른다.
역시 된장찌개는 뚝배기라며.
물론 H마트에는 수저도 있고 뚝배기도 판매하고 있었지만 늘 사용하던 익숙한 아이템 몇 개 만으로도 식탁은 훨씬 친근한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는 한식 중심의 식단이었지만 점점 미국식(?) 메뉴가 늘어났다.
아이들은 앞으로 일 년 동안 마트에 있는 각종 브랜드의 맥 앤 치즈 제품들을 한 번씩 다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베스트 오브 맥 앤 치즈를 골라보겠다며 신이 났다.
잘 먹고 새로운 걸 즐기는 우리에게 미국 마트의 수많은 레토르트 제품들은 '한번 먹어보자!'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전 세계의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들을 맛볼 앞으로의 '삼시 세끼, 집밥 이선생'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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