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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
    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1. 21. 08:50

    인터넷에서 봤던 아파트 광고사진은 말 그대로 광고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열쇠로 문을 두 개나 열고 들어간 아파트는 부엌의 빌트인 가전들과 세탁기, 건조기를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포근한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인테리어 사진으로만 접하다가 막상 실제로 보니 삭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집의 위치나 구조, 그리고 마룻바닥인 건 변함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입주청소를 막 끝낸듯한 깨끗함과 새하얀 벽이 마음에 들었다.

     

    도착 후 며칠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짐을 정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첫날은 밥을 먹고 씻고 쓰러져서 잠이 들었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학교와 운전면허, 핸드폰개통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가져온 짐을 거실 한쪽 벽에 쭈욱 늘어놓고는 각자 필요한 것을 찾아 쓰기로 했다.

    아이들은 곧잘 자기 물건들을 찾아 생활하며 처음 해보는 경험에 오히려 재미있어했다.

     

     

     

    각 방에는 워크인 클로젯이 딸려 있어서 각자 자신의 옷장으로 사용할 구역을 정했다.

    가져온 옷들이 많지 않아서 정리를 위해 따로 서랍장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저렴한 옷걸이만 잔뜩 사 와서 걸어야 할 옷들을 정리했다.

    속옷을 담아 온 비닐가방은 일 년 내내 속옷 정리함으로 사용하다, 여행 갈 때는 각자의 옷을 구분하는 용도로도 유용하게 쓰였다.

     

     

     

    마스터배드룸에 있는 옷장은 엄청 넓어서 부피 큰 겨울옷들을 정리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덕분에 여행가방들과 잡다한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의 역할까지 했다.

     

     

     

    우선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급하니까 가장 먼저 정리된 구역은 주방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날 첫 식사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식료품들과 급하게 장 봐온 음식들로 집에서 해결했다.

    아직 집 주변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가뜩이나 하루종일 쏟아지는 영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밥 먹을 때만큼은 좀 편안한 마음으로 먹고 싶었다.

    식탁조차 없어서 마룻바닥에 비닐을 깔고 식사를 하다 보니 소풍 온 것 같은 기분도 잠시,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매트리스 박스에 비닐을 씌워 임시 식탁으로 사용하였다.

    나머지 박스 한 개는 자연스레 임시 책상이 되었다.

     

     

     

    중고시장에서 운 좋게 이케아 식탁과 의자 두 개를 30불에 구매했다.

    펼치면 6인용까지도 사용 가능한 깨끗한 물건이라 완전 득템이라며 신나게 집으로 가져왔는데, 우리에겐 의자가 두 개 더 필요했다.

    그래도 식탁이 생긴 게 어디냐며 여행가방을 임시로 의자처럼 사용하고 급하게 아마존에서 접이식 의자 두 개를 주문했다.

     

     

     

    밥 먹을 때마다 뭔가 신혼생활 같으면서도 피난생활 같은 느낌이 불편하면서도 재밌었다.

    아이들은 식탁이 중고이던 의자가 여행가방이던 그저 신나 했다.

    새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아 밥도 먹고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는 이 상황에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나도 조급해지지 않고 점점 이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초등1학년인 둘째 아이가 빈 생수병으로 수저통도 만들어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수저들을 보관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수저통을 하나 사야 하나.' 하던 참에 이렇게 근사한(?) 수저통이 생긴 것이다.

    평소에 내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둘째 아이는 항상 가족들의 수저를 식탁에 놔주는데, 아무래도 자기 담당인 수저들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작은 생수통 여러 개를 잘라 서로 붙여서 각자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이후에 주방정리를 하며 서랍 한 칸을 수저보관하는 데 사용하게 됐지만, 아이가 만들어줬던 이 수저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욕실은 여행온 느낌 그 자체였다.

    여행할 때면 들고 다니는 칫솔걸이까지 가져와 사용하다 보니 정말 여행지 어느 콘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조만간 마트에 가서 새로운 향기의 샴푸나 로션들을 사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안 해본 걸 경험해 보는 건 정말 신나고 재밌는 일이다.

     

     

     

    미국에 와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건 바로 열쇠이다.

    지문등록으로 현관문을 출입하는 세상에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는 키라니. 게다가 우편함까지도 열쇠가 따로 있다.

    중고로 구입한 자동차까지 열쇠로 시동을 거는 방식이라 열쇠꾸러미엔 자동차키, 집키, 우편함키에 각종 마트의 포인트적립카드와 도서관카드까지 주렁주렁 달려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꾸러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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