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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아파트엔 푸드트럭이 와요
    미국에서 1년 살기 2024. 1. 9. 08:50

    거주자 등록을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한 리징오피스는 내가 생각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수영장 딸린 싱글하우스 같은 건물에 화사한 인테리어, 편안하고 푹신한 소파, 캡슐커피머신, 커다란 TV, 그리고 언제 마주쳐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직원들은 마치 호텔 라운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왠지 우리의 소박한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매달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에 가장 열심히 참여한 건 아마 우리 가족이었을 거다. 

    커피머신도 TV도 없이 살던 우리에겐 리징오피스에서 제공하는 소소한 서비스들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다.

    하루에 한 번씩 오피스에 들려 궁금한 걸 물어보거나 하자 수리 신청을 하면서 뽑아온 커피 한 잔은 스타벅스가 부럽지 않았다.

    자주 마주치는 직원들과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히고 나니 훨씬 편안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고, 자연스레 아파트나 주변에 대한 이런저런 팁들도 얻곤 했다.  

    오피스 한편엔 사방이 거울로 된 자그마한 체력단련실과 꽤나 널찍한 영화감상실도 있었다.

    스포츠센터를 등록한 터라 리징오피스의 운동기구들을 이용할 일은 없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상영해 주는 '무비나잇'은 대형화면을 그리워하던 우리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료로 팝콘과 탄산음료까지 제공되니 별다른 유흥 없이 보내던 우리 가족에겐 그야말로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중고거래를 하며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을 돌아다녀보니, 우리 아파트가 꽤 큰 규모의 아파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 주차장에는 가끔 푸드트럭들도 들어왔다.

    리징오피스에서 매주 보내주는 이메일이나 오피스 앞의 게시판에 공지되는 '이달의 푸드트럭 메뉴'를 보며 앞으로 일 년 동안 아파트에 오는 모든 푸드트럭을 다 섭렵하리라 마음먹었다.

    주로 저녁시간즈음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푸드트럭은 간단히 저녁을 때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먹거리들 먹어보는 것도 재밌고 저녁식사 준비도 안 해도 되니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만큼 모든 푸드트럭의 음식이 다 맛있진 않았고,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은데 팁까지 줘야 한다는 게 외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몽골리안 바비큐였는데, 한국에선 원하는 재료를 골라 바로 볶아 먹을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너무나 좋아하던 메뉴였으나 푸드트럭에서 우리가 받아 든 건 정체 모를 음식 찌꺼기 같은 느낌의 덩어리였다.

    짜기는 얼마나 짜던지 1인분만으로도 네 식구가 밥을 다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거기에 탄 맛은 덤으로.

    한번 씹으면 기름이 주룩 흘러넘치는 속 빈 만두는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 닦았을지 심히 의심스러운 레모네이드 통은 세트구성이 아니었다면 정말 안 사 먹고 싶게 만드는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몇 번의 실패 후 푸드트럭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초반엔 길게 줄을 늘어서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매출이 신통치 않았는지, 매주 들어오던 푸드트럭들은 격주로 들어오다가 결국엔 한 달에 한 번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그마한 샌드위치 트럭이 들어왔다.

    마침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너무너무 저녁식사 준비를 하기 싫던 참이었는데, '그래, 오늘 저녁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자.'란 생각에 종류별로 이것저것 주문해서 들고 들어갔다.

    기대 없이 먹어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너무나 우리 취향의 맛과 적절한 짭짤함에 모두들 엄지 척하며 여태 먹었던 푸드트럭들 중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그 후로 아이들은 샌드위치 트럭이 들어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둘째 아이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비프베이크와 맛이 비슷한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가장 좋아했는데, 철판에 요리하는 냄새조차 맛있다며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에도 트럭 앞을 떠나질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에 아이가 너무 열렬히 쳐다봐서 그랬는지, 아저씨는 우리가 두 번째 방문한 걸 기억하고는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봤다.

    너무 맛있어서 아이가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말에 아저씨가 웃으셨다.

    우리 동네엔 언제 또 오냐고 물어보니 스케줄이 딱 정해진 게 아니라 그때그때 바뀐다고 했다.

    더 자주 먹고 싶은데 아쉽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으셨는지, 계산할 때 네 개 중 딸아이가 먹을 메뉴가 어떤 건지 물으시며 그건 공짜라고 하셨다.

    Oh~ yes!

     

     

     

    집에 돌아온 아이는 잔뜩 흥분해서 아빠에게 얘기를 전하며 앞으로 저 천사아저씨 샌드위치는 매일매일 먹을 거라고 했다.

    가장 비싼 맛있는 8불짜리 샌드위치를 선뜻 공짜로 주셨으니 아이에겐 천사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동네에 오시던 순대차 아저씨는 너무나 단골인 딸아이에게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순대를 길쭉하게 잘라서 쥐어주시곤 했다.

    그런 친절한 아저씨를 미국에서도 만나다니.

    음식맛에 상관없이 '미국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 1등이 샌드위치가 돼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 먹을 거라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이 날이 우리가 푸드트럭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은 마지막 날이었다.

    두 번 정도 먹어보니 대략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서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줬더니 너무 좋아하며 계속 먹다가 결국 샌드위치에 질려버렸다.

    그 이후로는 샌드위치 푸드트럭이 들어오는 날이면 괜히 아저씨 눈에 뜨일까 눈치를 보며 다니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아저씨의 선의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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