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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미국에서 1년 살기 2023. 12. 21. 08:50

    "오랜만에 감성 돋는 손 편지 한번 써볼 테니 주소 좀 알려줘 봐."

    "훗, 카톡으로 대화하고 있으면서 무슨 편지? 너 설마 미국에 올 일 있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우리의 눈물겨운 좌충우돌 정착기에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이 이어졌다.

    그중 한 친구가 카톡으로 우리 집 주소를 물었다.

    옛날 옛적에 유학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러나? 싶어 우리 집에 놀러 오려는 거냐 농담하며 주소를 알려줬다.

     

    워싱턴 D.C. 에 다녀온 뒤 며칠이 지나자 커다란 택배가 도착했다.

    워낙 아마존에서 이것저것 주문한 터라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기사가 우리 집 앞에 박스를 던져놓고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엔 내려놓는 소리 자체가 달랐다.

    그 둔탁하고도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층 전체가 흔들린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뭐지?

    현관문을 열어보니 테이프를 칭칭 감은 커다란 박스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한글이 쓰여있는 박스는 꽤나 묵직했다.

    송장의 발송인에 우리 집 주소를 물어본 친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 녀석... 설마......'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각종 과자와 사탕, 오징어 같은 간식거리들이 가득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택배만 도착하면 옆에 쪼르르 와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난데없는 간식폭탄에 환호성을 질렀다.

    "OO이모가 너희 먹으라고 보내주셨나 봐."

    "와,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고구마 말랭이야."

    "그래? 그럼 이거부터 뜯어야지~"

    "안돼~ 뜯지 마~"

     

     

     

    과자 하나에 놀리고 흥분하며 옥신각신 하던 아이들은 뭐부터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한국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저녁시간이었다.

    바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이게 뭐야~ 너 왜 이래~"

    "도착했어? 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는데?"

    "왜 그랬어~ 너 이거 부치는데 돈이 더 들었겠다. 뭐야 진짜..."

    "애들 좋아해?"

    "엄청 좋아하지. 지금 완전 흥분상태야. 고구마 말랭이 하나 가지고도 난리다. 안 뜯고 아껴놓겠데."

    "그래? 더 보낼걸 그랬네."

    "아냐 아냐. 너무 좋아서 그렇지. 너무 고맙다. 진짜."

    "애들이 좋아하면 됐어.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 간식 먹고 기분이라도 좋아지라고."

     

    사실 H마트에 갈 때마다 아이들은 한국 과자를 골라오곤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면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여기 있는 동안에는 여기서만 먹어볼 수 있는 걸 먹어보자며 아이들을 살살 달랬다.

    지금까지 먹어본 미국 과자들은 짜면서도 짜고 또 짰다.

    짠맛 외에는 못 느끼는가 싶을 정도로 한결같은 맛에 아이들은 불평했고 이런 짜기만 한 맛없는 걸 계속 먹게 해야 하나 나도 회의감이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선물과도 같은 간식폭탄을 받은 아이들은 흥분해서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빠, 봐봐. 이건 H마트에도 없는 거야."

    "와, 진짜. 완전 대박이다. 엄마, 이건 새로 나왔나 봐요."

    "그러네. 엄마도 처음 보는 거네. 그동안 새로 나왔나 보다."

     

    신중하게 가장 처음으로 맛볼 간식을 의논하던 아이들은 허니버터오징어를 골라 자리 잡고 앉아서는 한가닥 한가닥씩 음미하며 아껴먹었다.

    안주거리가 많아져 덩달아 행복해진 남편은 맥주 한 캔을 들고 아이들 옆에 앉았다.

    아껴먹으라는 아이들의 핀잔을 들으며 오징어 한가닥을 받아 들고는 어이가 없던지 나를 보며 웃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준 한여름의 산타선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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