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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방접종 잘하고 아프지 말기
    미국에서 1년 살기 2024. 1. 19. 08:50

    독감 예방접종의 시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매년 챙겨서 맞았었기 때문에 미국에 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타지에서 아프면 왠지 더 서럽고 고생스러울 것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예방접종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독감 예방접종이 무료였지만 우리는 여행자보험이라 해당이 되지 않아 접종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독감 예방접종은 일반 병원 외에도 CVS 같은 약국(?)에서도 가능했다.

    특이했던 건 우리가 자주 가는 코스트코 안에도 약국이 있었다.

    처방약 조제뿐만 아니라 독감 예방접종도 하고 있었는데, 장을 보러 갔다가 코스트코가 가장 저렴하다는 걸 발견하고 아이들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갔다.

    어떤 장난감이나 간식을 살까? 하며 룰루랄라 따라온 아이들은 오늘은 코스트코에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얘기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병원도 아닌 데다가 미국에서 맞는 첫 주사(?)라 떨리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린 후 드디어 접수를 하는데 그제야 미국은 각 주에 따라 어린이 예방접종에 관한 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NC는 주법에 따라 14세 미만의 어린이는 코스트코나 일반 CVS 에선 접종이 불가하고 병원에 가야만 했다.

    이런......

    진작 얘기해 주지. 아니, 어디에 써붙여놓기라도 하지.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할 수 없이 내 이름만 접수를 하고 잠시 대기했다가 예방접종을 했다.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나면 미국에 온 지 꽉 채워 세 달째인데 이젠 미국에서 생활하는게 익숙하고 편해져서 난 내 영어가 엄청나게 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방접종 접수하면서 처음 듣는 용어도 많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접수원에게 계속 물어보며 멘붕에 빠졌다.

    영업시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 친절하게 응대하며 하나도 안 아프게 접종해 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한 말은 "Thank you."뿐이었다.

    자괴감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내가 평소에 만나는 ESL 선생님들이나 아이들 학교선생님들이나 교회 사람들은 다들 쉬운 말로 또박또박 얘기해 줘서 대화가 가능한 거였다.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나라 친구들하고 아무리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고 해도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선 그 수준이 그 수준일 테니 그저 서로 찰떡같이 알아듣고 눈치껏 대화를 이어왔던 것 같다.

    처음에 미국 공항에서 내가 영어로 말할 때마다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요즘엔 "엄마 아빠가 영어로 말할 땐 왠지 좀 창피해요."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네가 영어가 좀 늘었고 네 생각을 소신 있게 말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가 너보다 잘하거든? 흥!

    내가 키우고 싶은 영어실력은 아이들이 좀 창피해하는 이상한 한국식 발음일지라도 나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억울한 심정에 대한 항변정도는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접종얘기로 돌아와서, 마침 집 바로 앞에 있는 타겟 안에 minute clinic이 붙어있는 CVS가 있었는데 일반 CVS와 달리 아이들의 예방접종이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다음날 아이들 방과 후에 타겟으로 갔다.

    어제 주사를 맞지 않아서 참 행복했던 아이들은 다시 하루 만에 돌아온 현실을 부정하며 도대체 왜 미국에선 마트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어느 마트에 가던 신나고 재밌어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앞으로는 마트에 가자고 하면 "혹시 또 주사를 맞아야 되는 건 아니죠?"라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팔에 힘을 최대한 빼야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더니, 아이는 세상을 다 잃은 양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힘을 빼고 앉았다.

    미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을 독감예방접종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순서나 방식과 달랐기 때문에 맞는 아이들이나 지켜보는 나나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앉아있었던 덕분인지 주사 놓는 분이 기막히게 놔준 덕분인지, 아이는 하나도 안 아팠다며 한결 후련한 얼굴로 돌아왔다.

     

     

     

    접수할 때 분명 한 명당 $15라고 들어서 '어라? 여기가 코스트코보다 싸네? 오호라~' 했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50이었다.

    분명히 '퓝쓰틴'이라고 들었는데......

    영수증을 바라보며 또다시 자괴감에 빠졌다.

     

     

     

    접종 후에 받은  $5 off 타겟 쿠폰을 보며 씁쓸한 기분을 달랬다. 

    왠지 접종료를 할인받은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보건소에서 아이들은 무료로 독감 예방접종을 한다는 걸 바로 다음날 알게 되었다.

    자그마치 $100인데...

    우리, 아프지 말고 이번 겨울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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